꽁꽁 싸매는 게 직업, 크리스토와 쟌-클로드의 파리 개선문 프로젝트 - 1 / Christo et Jeanne-Claude - L’Arc de triomphe empaquet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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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랑블루아트의 레아입니다 : )
학교 졸업하고 3개월간의 방학을 한국에서 보내고 프랑스에 돌아와 처음으로 쓰는 글이겠네요.
이번 시간에는 요즘 핫한 이슈인 크리스토와 쟌-클로드의 파리 개선문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Christo et Jeanne-Claude - L’Arc de triomphe empaqueté
크리스토&쟌-클로드(Christo et Jeanne-Claude), 그들은 누구인가?
; Christo Vladimiroff Javacheff & Jeanne-Claude Denat de Guillebon
천생연분이라고 해야 될까요. 같은 해, 같은 날(1935년 6월 13일) 각각 불가리아와 모로코(출신의 프랑스인)에서 태어난 이 부부.
이들은 설치/환경, 대지 미술가 부부로 거대한 크기의 작품들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들 부부는 주로 오브제나 자연 등을 천으로 포장하는 작업들을 해왔죠.
이들 부부의 삶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Christo
남편인 크리스토의 아버지는 섬유 공장을 운영하셨고, 어머니는 불가리아에 위치한 소피아 미술학교에서 비서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크리스토의 어머니는 1913년도 마케도니아를 떠났는데, 그 연유인지 크리스토는 스스로를 체코 태생의 불가리아 마케도니아인으로 불렀습니다. (참고 : 마케도니아인 / 불가리아의 역사)
크리스토의 아버지는 불가리아 공산주의 정권 눈 밖에 나 괴롭힘도 당하고, 투옥도 했다고 해요. 그러므로 크리스토는 꽤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었죠. 그는 1953년 소피아 미술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몇 년간 그림, 조각 그리고 건축 등을 공부하게 됩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공산주의 불가리아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 그는 오스트리아, 제네바를 거쳐 1958년, 파리로 가게 됩니다.
Jeanne-Claude
아내인 쟌-클로드의 어머니는 17살의 나이에 그녀의 아버지와 결혼하여 쟌-클로드를 낳게 됩니다. 쟌-클로드가 태어난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이 둘은 이혼을 하게 되지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살기도 했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가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참고 : 레지스탕스 프랑세즈)
쟌-클로드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와 이혼 후 세번의 재혼을 하게 됩니다. 그중 마지막 남편인 프랑스 장군이자 에꼴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의 총장이었던 쟈크 드 기유봉(Jacques de Guillebon)과 재혼 후 이들은 비로소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죠. 그녀의 새아버지는 그녀를 입양하여 그녀의 정식 아버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새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스위스 베른, 튀니지를 거쳐 1957년 파리에 정착하게된 그녀. 튀니지에 살던 1952년 그녀는 철학과 라틴어 바칼로레아(Baccalairéat)를 보게 됩니다.
1958년의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인 프레실다 드 기유봉의 초상화 주문을 계기로 크리스토가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렇게 쟌-클로드와 크리스토는 사랑에 빠지게 되죠.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는데, 인생의 파트너를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크리스토와 함께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에게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철학과 라틴어를 공부하던 쟌-클로드는 어떻게 하다가 예술가가 되었을까요?
사실 그녀는 크리스토를 만나기 전까지는 예술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예술을 하고자 불가리아를 떠나온 용감한 젊은 예술가에게 큰 매력을 느낀 그녀는 크리스토의 인생의 파트너이자 예술 파트너가 되어주기로 결심하죠. 이 둘은 그 후 수많은 설치 작품들을 함께 만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작품들 (아래에서 사진들을 확인해보세요)
1958년부터 그리스토와 쟌-클로드는 앙파크타주(empaquetage/empaqueté)로 불리는 포장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1964년에 뉴욕으로 이주를 하게 되는데요, 그 후 대규모의 포장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기 시작했죠.
그들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크기가 대규모였기에 실제로 설치되는데 까지 보통 몇 년이 소요되곤 했습니다. 도시에 설치된 유명 프로젝트들로는 베른의 쿤스트할레 포장(1968), 파리의 퐁뇌프 포장(1985), 베를린의 라이히 슈타크 포장(1995)이 있습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그외에도 시드니 인근 해변을 따라 1마일을 포장한 해변 포장(1969), 마이애미 비스케인 만에 위치한 열한 개의 섬을 포장한 작업인 둘러싸인 섬들(1983)을 선보이기도 했죠. 그 외에도 뉴욕 시와 25년간 협상 후 이들은 센트럴파크에 더 게이츠(1979~2005), 런던 하이드 파크에 위치한 서펜타인 호수에 석유 드럼통들을 설치해 만든 런던 마스 타바(2018)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토는 뉴욕 자신의 집에서 눈을 감는 날까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포장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습니다. 그의 아내인 쟌-클로드가 2009년 타계하고 그까지 작고하게 되어 자칫하면 이 개선문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크리스토의 조카인 블리디미르 자바체프가 그의 작업을 이어받아 다행히 올해 9월, 파리 개선문 프로젝트는 시민들에게 공개가 되었습니다.
센느강변을 걷다보니 파리시청에서 설치한 크리스토&쟌-클로드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안내판이 보입니다.
자 지금부터는 제가 직접 개선문에 가서 찍은 크리스토와 쟌-클로드 커플의 파리 개선문 프로젝트의 모습입니다.
개선문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머물며 사진을 찍다가 만나기로 한 학교 친구가 도착해서
함께 이들 부부의 프로젝트가 전시중인 소더비(Sotheby's)로 이동했습니다.
사진 수가 많아서 소더비에서 찍은 사진들은 2편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신과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바로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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